백만 년 만에 가방을 구입했다. 10여 년 전 길거리표 백팩을 1만원에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7~8년 전 포럼에 참석하여 기념품으로 받은 백팩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방이 낡은 것은 아니지만 여름에 백팩을 메고 다니면 등에 땀이 넘쳐 홍수를 이룬다. 때문에 숄더백을 하나 구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무렵 인스타그램에서 가방 하나가 내 눈길을 유혹했다. 사진 속 가방은 요염한 자세로 눈부신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엘리의 가방제작소 제품은 내게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로 엘리팩토리 홈페이지로 접속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했다. 마침 7월1일~7월31일까지 여름 정기세일이란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고민은 뒷주머니에 쟁여놓고 바로 색상과 사이즈를 골랐다. 말해 뭐하는가. 2달 전에 새로 장만한 명함지갑과 같은 색으로 결정했다. 깔맞춤이다. 사이즈는 가장 큰 빅사이즈(PLUTO385)로 택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작은 것보다는 수납이 넉넉한 빅사이즈가 제격이다. 이 또한 기존에 제작되지 않던 사이즈인데 고객의 요청으로 새로 추가된 사이즈라고 했다. 딸 날 위함 그 자체였다.
주문한 지 이틀 만에 가방에 도착했다. 초등학생이 첫 가방 선물 받을 때만큼이나 설렘이 가득했다. 실물을 영접할 생각을 하니 떨림까지 넘실거렸다.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집앞에 배송 완료됐다는 메시지다. 냉큼 달려가 박스를 가지고 들어왔다.
아름다운 처자를 소개 받는 설렘으로 박스를 뜯었다. 박스 한쪽 구석에 붙어있는 스티커에서부터 감동이 전해졌다. 별 것 아닐 것 같이 무심히 붙어 있는 스티커에서 장인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자고로 장인은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담기 마련이다. 때문에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인다. 그것을 알기에 감동은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박스를 여는 순간, 역시 감동이다. 사진보다 실물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사진으로는 너무 밝은 것 같았는데, 실물은 딱 적당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엘리 팩토리는 ‘잔인함이 없는 가방을 만듭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가장 좋은 품질의 인공피혁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루이비○, 버버○, 몽블○ 같은 흔한(?) 디자인보다 취향저격 당했고, 가격도 그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인공피혁이라고 하는데 촉감은 어느 가죽과 다르지 않다. 색깔 또한 큰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겉감도 그렇지만 속감은 그 부드러움 촉감이 갓난아이의 피부처럼 뽀송뽀송하다. 어찌 이런 촉감을 만들어 낸 것일까? 역시 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솜씨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23% 세일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거나이저(휴대폰, 볼펜, 서류 등을 담을 수 있는 수납 내장품)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이것은 개별 상품으로 판매되는 것으로 이만 원이 넘는 제품이자 수제품이다. 처음 구매할 때 옵션에 있기에 선택할까 말까 고민을 했었는데, 덤으로 제공해 주고 있기에 당연히 선택했다. 이것은 제작 주문하는 제품이기에 가방 색깔과는 무관하게 랜덤으로 발송해 주는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 또한 가방의 색에 깔맞춤으로 추가되어 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이제 이 가방 하나로 비즈니스 미팅이나 캐주얼 미팅 때 선택 고민 없이 외출할 때마다 동행할 수 있게 됐다. 비즈니스 미팅 때는 숄더백으로, 캐주얼 미팅 때는 백팩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가방의 장점이기도 하다. 특히나 백팩으로 사용할 때는 일반적인 백팩과는 달리 가로본능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색다른 패션을 구사할 수 있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틀 후 전공교수님과 미팅이 잡혀있다. 그때 첫 외출에 동행하려 한다. 멋짐을 뿜뿜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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